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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和는 나와 다른 것을 존중하고 공존하는 원리이고, 同은 흡수해서 자기 것으로 만드는 원리" - 신영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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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11/27 22:23 Biz 2.0/Social Network
'최진실법'과 인터넷 개인정보

2008년 10월 2일, 유명배우 였던 최진실씨가 자택 욕실에서 숨진 채 발견되었다. 경찰 조사 끝에 자살로 판명이 난 그의 죽음은 인터넷 문화와 관련한 중요한 논쟁을 불러 일으켰다. 최진실씨가 약한 우울증을 앓고 있었고 매우 사적인 이야기들이 인터넷에서 회자되면서 커다란 정신적 고통을 겪었다고 알려졌다. 소위 '악플러'라 불리는 사용자들의 무분별한 '악성댓글'이 그녀의 죽음의 중요한 원인이 되었다는 지적이 일었고 정부 여당은 소위 '최진실법'을 도입하게 된다. 

'최진실법'은 사이버 모욕죄, 인터넷 실명제 확대 등을 포함하는 '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 개정안'의 속칭인데 정부여당인 한나라당은 '비판적 여론에 재갈을 물리려는 음모'라는 야당과 네티즌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2009년 4월 개정안을 통과 시키게 된다. 사실 이 법은 애초 2007년에 제정되었던 법을 강화시킨 것인데 매일 10만명 이상의 사용자가 방문하는 인터넷 사이트에 댓글을 달기 위해서는 개인정보, 즉 본인의 이름과 주민등록번호 등을 의무적으로 등록하게 한 법이다. 그래서 이 조항은 '제한적 본인 확인제(制限的本人確認制)' 또는 '인터넷 실명제'라고 부른다. 



'인터넷 실명제'의 헛발질
 

하지만 정부여당의 이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소위 악성댓글의 비중이 특별하게 줄어들지 않았다. 법 시행후 실시된 한 조사에서 악성 댓글의 비중이 15.8%에서 13.9% 정도로 미미하게 줄어 들었을 뿐이다. 댓글 다는 사람에게 '책임 있는' 댓글을 강제하겠다는 이 제도는 더 큰 문제만을 발생시켰다. 

지난 11월 18일 국내 최대의 게임회사인 넥슨이 제공하는 '메이플 스토리'라는 게임 가입자 1,320만명의 개인정보가 해킹에 의해 유출된 사건이 발생했다. 넉달전에는 싸이월드로 유명한 SK커뮤니케이션즈의 경우는 이보다 더많은  3,500만명의 개인정보를 유출했다. 해커에 의해 유출된 이런 개인정보 들은 상업적 목적에 이용되는 것은 물론 범죄에 악용되는데 사실상 인터넷을 사용하는 거의 모든 한국인들의 개인정보는 악덕기업이나 범죄자들의 손에 들어가 있다고 보아도 무방할 정도다. 개인정보를 보호하겠다는 법이 오히려 개인정보 보호를 유린하는 아이러니컬한 상황이 된 것이다. 

세계에서 가장 큰 인터넷 서비스 기업인 구글(www.google.com)의 회장인 에릭 슈미트라는 사람은 이렇게 말했다. "숨기고 싶은 비밀이 있다면 인터넷에 올리지 않는 것이 최선이다" 다시 말하면 인터넷에 올린 모든 정보는 '위험하다'는 뜻이다. 왜 일까?

인터넷은 정보의 저장과 무한 복제를 기본 속성으로 한다. 일단 인터넷에 올린 모든 정보는 아무리 삭제를 하고 관리를 한다 하더라도 완벽하게 제거하는 것이 쉽지 않다. 또 정보 보안 기술이 아무리 발달한다 하더라도 이를 악용하려는 시도를 다 막아내는 것이 불가능하다. 기술의 발전은 공격자들에게도 공평하게 주어지기 때문이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인터넷 실명제'는 매우 어리석은 제도이고 법률인 것이다. 물론 이 법의 제정 목적이 인터넷 사용자들의 정보 보호라 보기 어렵다. 오히려 정부에 비판적인 사용자들을 추적하고 감시하기 위해 이 조항이 더 필요했을 것이다. 


보호해야할 개인정보

전세계 5억의 인구가 매월 1회이상 사용한다는 페이스북



그런데 개인정보 유출의 주범이 '해커'일까? 그렇지 않다. 한국에서 약 400만명의 사용자를 가지고 있는 페이스북(www.facebook.com)은 개인정보 유출의 비판과 비난을 가장 많이 받고 있는 서비스다. 페이스북은 미국의 서비스이니 한국인들에게나 있는 주민등록번호 같은 정보를 요구하지 않는다. 그러나 페이스북에는 개인의 가족관계, 친구관계, 직업이나 학력, 나아가 개인적인 취향이나 성향 등도 얼마든지 공개될 수 있다. 나아가 그가 현재 어디에 있고, 어디로 이동하는지, 그리고 무엇을 했는지도 알 수 있다. 이런 정보들은 사용자들을 부지불식간에 자신의 '프라이버시'를 침해받을 수 있는 환경에 처하게 만든다. 더우기 해킹과 같은 불법적인 행위는 처벌 받지만 페이스북과 같은 소셜 네트웍 서비스에서의 개인 정보는 본인의 동의와 조작에 의해 일상적으로 유출된다. 모든 사용자들이 프라이버시 침해의 위험성을 충분히 알고 대응하지 않기 때문에 사회적으로 더 큰 문제를 일으킬 수 있다. 

페이스북의 창업자인 마크 주커버그는 '프라이버시 시대의 종언'이라는 주장을 한 바 있다. 즉, 인터넷의 발달과 모든 사람들이 생활속에서 인터넷을 사용하는 시대이기 때문에 더이상 프라이버시를 보호받기 어렵고 역설적으로 프라이버시가 없는 시대, 또는 없어도 되는 시대로 가자는 주장이었다. 그의 이 발언이 큰 물의를 일으키자 이런 주장을 더이상 하지 않았지만 페이스북이라는 회사가 '프라이버시를 상업적으로 이용하는 기업'이라는 비판이 틀리지 않음을 스스로 인정한 것이다. 

자본주의 기업은 상품이나 서비스를 많이 팔아서 이익을 최대로 남기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기업은 '프라이버시'를 존중하고 보호하는 것이 불편하다. 소비자의 개인 정보와 개인 특성을 많이 알면 알수록 적은 비용으로 더 많은 상품을 판매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 페이스북이나 구글, 한국의 네이버와 같은 회사는 사용자들의 개인화된 정보를 직간접적으로 사업에 이용할 뿐 아니라, 법으로 제재하기 모호한 빈틈을 적절히 활용한다. 기업의 이러한 속성은 사회적인 제제나 법적인 규제가 없다면 개인의 프라이버시를 보호하려 하지 않을 것이라는 걸 의미한다. 프라이버시에 대한 기업의 탐욕을 기술적으로 통제하기는 쉽지 않다. 마치 아무리 보안기술이 발전한다 하더라도 해커의 공격기술도 발전하는 것과 비슷하다. 

'내가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는가'를 알 수 있는 위치 정보도 중요한 개인정보이다



소셜 네트웍 서비스와 프라이버시


인터넷의 발전, 특히 고도화된 검색서비스나 페이스북과 같은 소셜 네트웍 서비스가 발전하면 할수록 개인정보의 유출, 프라이버시 침해 가능성은 높아진다. 일부의 기술 전문가들은 기술적으로 더이상 프라이버시를 지키는 것이 불가능함을 호소하기도 한다. 그러나 역사적으로 프라이버시는 개인의 고유한 권리, 시민적 정치적 권리의식으로 부터 출발했다. 국가권력으로 부터 보호되는 개인의 권리로써의 프라이버시는 고도로 인터넷이 발전한 현대에 와서 기업의 먹잇감으로 내놓아진 것이다. 프라이버시를 보호할 대상이 그 대상이 국가에서 기업으로 바뀐 것이다.

기업의 상업적 목적에 이용되는 개인정보와 프라이버시 침해에 대해 사회적 관심이 더욱 필요하다.사회적 통제 없이 기업이 사용자들의 프라이버시를 자발적으로 보호하려 하지 않기 때문에 더 그렇다. 깨어있는 개인과 그들의 집단적 사회적 노력만이 프라이버시 문제를 개선하고 해결할 수 있다. 하지만 우리 사회에서 프라이버시 보호의 문제는 그닥 주목을 받고 있지 못하다. 안타깝다. 

잠깐!

사회적 노력과 함께 일단 개인적으로 조심합시다. 에릭 슈미트가 말했듯이 스스로 지켜야하는 정보는 무조건 인터넷에 올리지 맙시다. 쉽지는 않지요? 하지만 항상 염두해 두시고, 그 어떤 개인 정보, 전화번호, 주민번호나 카드정보,은행,보험 과 같은 정보 뿐만 아니라, 이메일 주소 등 자기 자신만을 특정한 정보, 자신의 위치나 행위 정보 등도, 정말 필요한 만큼만, 최소한으로 인터넷에 올리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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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출하
2011/09/14 17:51 Social Enprenuership
지난 9월 5일 경기도 소재 '경기도인재개발원'에서는 경기복지재단(이사장; 서상목)이 주최하는 '사회적기업과 지역혁신'이라는 제목으로 제3차 경기복지포럼이 열렸다. 주지하다시피 노동부에서 직접 주관하던 사회적기업 육성 정책이 사회적기업진흥원(원장; 류시문)으로 이관되고 각 지방자치단체에서 실제 집행하는 방법으로 바뀐 것이 올해의 주요한 특징의 하나다. 이런 흐름을 반영하면서도 무엇보다 광역단체장인 도지사가 직접 사회를 맡아 토론을 이끌었다는 점이 눈에 띤다. 단체장이 직접 관심을 가지고 추진하겠다는 분명한 의지를 보여줌으로써 앞으로 지방정부와 사회적기업간의 활발한 협력을 기대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사회적기업과 지역경제발전

제목에서도 알 수 있지만 사회적기업을 지역경제발전 목적과 결합시켜 이것을 '지역혁신'이라는 개념으로 표현한 것은 상당한 의미를 가진다. 중앙정부에서 추진하는 정책은 기본적으로 전국단위의 산업정책이나 노동정책, 나아가 경제정책 차원에서 추진하게 된다. 그런데 중앙정부가 추진하는 국가정책이라는 점에서 국가적 아젠다로 보다 힘있게 진행될 수 있다는 장점도 있는 반면 아주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정책의 집행이 쉽지 않다는 단점이 있다. 특히 사회적기업이 아직 초기단계로써 기업 규모가 작고 사회적 시장이 잘 형성되어 있지 않은 조건에서 성공한 사회적 기업을 발굴하고 육성하는데 있어서 중앙정부가 구체적인 성과를 만들기는 쉽지 않다. 반면 지방자치단체는 각 지역의 특성을 반영하고 해당 지역의 다양하고 현실적인 자원을 효과적으로 묶어서 추진함으로써 보다 현실적인 정책 수행이 용이하고 결국 모범 사례를 만드는데 유리하다. 

보건복지가족부에서 주관하는 복지기업, 행정안전부에서 추진하는 마을기업이나 지역공동체일자리사업, 희망마을 만들기 사업, 기획재정부에서 추진하는 커뮤니티 비지니스(Community Business), 농림수산식품부에서 추진하는 농어촌공동체회사 등 각 지역단위를 기반으로 하는 사업들로써 그 취지에 있어서 넓은 의미의 사회적기업과 맞닿아 있다. (커뮤니티 비지니스 및 유사 개념에 대해서는 본 블로그 참조, 희망제작소 커뮤니티비즈니스 연구소)이러한 정책과 그 예산은 결국 지방자치단체로 모아지고 만약 그 단위에서 잘 조율되어 집행한다면 보다 큰 효과를 낼 수다. 이번 포럼에서는 지방정부 단위에서 집행되는 각종 정책과 예산을 효과적으로 통합운영할 것에 대한 요구가 많았다. 

지역 사회적기업과 사회적경제

사회적기업이 지역단위에서 추진된다는 의미 외에 본 포럼에서는 또다른 중요한 의제를 던지고 있다. 주지하는 바와 같이 사회적기업법은 주식회사나 사회단체의 사업단 방식의 사회적기업을 정의함으로써 그 사업의 주체 형태를 협소하게 정의하고 있다. 또한 시장 경쟁 방식의 기업활동을 주요한 사업방식으로 전제하고 있는 점도 사회적 기업의 발전가능성을 제약하고 있는 면이 있다. 그런데 본 포럼에서는 공식적인 의제는 아니었지만 사회적기업을 보다 넓은 의미에서의 '사회적 경제(social economy)'를 발전시키는 차원에서, 또는 그와 협력하는 차원으로 자리 매김해야 한다는 제안이 많았다. 

영미와는 달리 이태리나 스페인을 비롯 유럽의 많은 나라들은 다양한 협동조합(cooperative)을 중심으로한 사회적 경제에 대한 오랜 전통이 있다. (협동조합에 대한 자세한 사항은 한겨레경제연구소 발간 HERI 리뷰 19호, 2011년 7월 11일 자 협동조합 특집 편을 참조하세요) 지배적인 경제제도인 자본주의 시장 경제, 즉 '자본적 경제'의 대안으로 발전해온 '사회적 경제'는 2008년 금융위기와 그 이후 계속되고 있는 세계 경제위기의 심화에 따라 더욱 주목받고 있다. 그런데 '경제활동을 통한 사회적 가치의실현'이라는 사회적기업의 근본 취지를 생각해 볼 때 지역 공동체형 사회적기업이나 사업들은 사회적 경제의 근본 개념과 취지에 별로 벗어나지 않는다. 이번 포럼에서 발표한 원주의료생협, 진안마을공동체, 완주커뮤니티비즈니스센터 등은 넓게 보아 유사한 노력을 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최근 사회적기업 커뮤니티 안에서는 개별 사회적기업에 대한 직접적인 지원 방식을 넘어서 사회적기업에 지원될 사회적투자를 활성화 하는 문제, 윤리적 소비 등 사회적 시장을 육성하는 문제 등이 화두가 되고 있다. 또한 내년인 2012년 '세계협동조합의 해'를 맞이하여 '협동조합 기본법'을 제정하기 위한 노력도 전개되고 있는데 사회적기업의 또다른 주요형태로 협동조합을 만들어 나가자는 제안인 것이다. 이렇듯 사회적 투자, 사회적 시장, 협동조합 방식의 사회적 기업에 대한 검토 등은 모두가 사회적기업에 대한 보다 깊이있는 이해를 전제로 한다. 그리고 이러한 사회적 기업의 발전이 곧 사회적 경제로 확대되고 국가정책적인 차원으로 설계되어야 함을 시사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사회적기업을 지역경제발전의 주요 방법으로 고려하기 시작하면서 '사회적기업법'에서 정의한 개념에 한정되지 않는 사회적기업담론이 발전하고 있다. 사회적기업을 지역경제발전이라는 관점에서 보면 지역 공동체적인 사회적가치에 기반을 둔 소위 '사회적 경제' 개념으로 수렴되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라 할 수 있다. 그리고 더욱 중요한 것은 이러한 노력이 담론에 그치지 않고, 또는 담론이 만들어지기 전임에도 불구하고 각 지역 현장에서 활발히 실험되고 있다는 점이다. 

사회적 기업, 사회적 경제

사회적 경제에 대한 100여년의 전통을 가지고 있는 유럽국가들에 비해 한국의 자본주의 산업화 역사가 짧은 만큼 사회적 경제는 더욱 생소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회적기업에 대한 높은 관심은 자연스럽게 사회적 경제로 발전하고 있다. 자본적 기업, 자본적 시장, 자본적 경제와 대비되는 사회적 기업, 사회적 시장, 사회적 경제는 사실 기업활동과 그 총체로써의 경제에 대한 새로운 관점을 제시하고 있다. 그 전통이 약한 만큼 충분한 이해와 연구, 사회적 기업가들의 도전이 요구된다할 것이다. 한국 경제의 산업화가 압축적이었고 단기간에 선진국의 반열에 들어선 만큼, 사회적 기업과 사회적 경제의 발전도 그만큼 빠르게 발전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도 가능하지 않을까... 



사회적기업가학교 사무국장 
박 성 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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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8/25 14:20 Social Enprenuership
(먼저 잠깐 시간을 내어 다음의 동영상 강연을 보아 주시기 바랍니다.)

위 영상은 미국 버지니아 공대의 로멜라(
RoMeLa; Robotics & Mechanisms Laborator )라는 이름의 로봇공학연구실에서 개발한 '시각장애인을 위한 차량운전시스템기술'을 소개한 내용이다. 이 연구소의 리더인 대니스 홍( Dennis Hong 한국 이름 홍원서, 지난 6월 4일 국내의 한 공중파 방송에서 시각장애인차를 개발한 세계적인 과학자로 소개한 다큐멘타리를 방영한 바 있다) 교수가 직접 설명한 이 장애인 차량의 소개 영상을 보면 비록 자동차 경주장이라는 제한된 장소이지만 시각장애인 자신이 차량의 속도와 방향을 조정하며 장애물을 인지하고 피해가는 모습을 직접 시연한 장면이 나온다. 이 차량을 운전한 마크 리코보너씨는 평생 시각 장애인으로 살아왔고 처음으로 '자신의 의지'에 따라 차량을 운전하고 차에서 내리자 뜨거운 눈물을 흘린다. 그 옆 자리에 서서 그에게 굳은 악수를 나누는 사람이 바로 대니스 홍 교수다. 

무엇을 위한 기술인가?
 혹자는 인류 문명사는 곧 과학기술의 발전사라고 말한다. 오랜 고대에 인류가 불을 이용하기 시작하면서 인간은 동물과 구별되기 시작했고, 바퀴를 발명하면서 로마제국은 흥성하게 되었고, 나침반을 발명함으로써 바다를 정복했고, 금속활자 인쇄기를 개발함으로써 지식혁명이 시작되었고, 증기기관을 만듦으로써 산업혁명을 가능하게 했다는 것이다. 이러한 과학기술의 발전을 통해 인류는 자연의 한계를 극복하기 시작했고 하늘을 날고 바닷속을 탐험하고 우주를 개척하기 시작하였고 이 발전에는 어떠한 제약도 점차 사라질 것이라는 믿음을 키워 나가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그러나 이와는 반대로 인류의 과학기술의 발전을 비판적으로 보는 견해도 없지 않다. 핵분열의 원리를 발견해서 원자폭탄을 만들 수 있는 길을 열었던 아인슈타인은 2차세계대전에서 일본의 히로시마 나가사키에 떨어진 원자폭탄에 의해 인류에게 씻을 수 없는 고통과 상처, 공포감을 불러 일으킨 것을 보고 분노하고 통곡했다. 그는 자신이 발견한 과학의 원리가 인류를 위해서 사용되지 못하고 파멸적인 도구로 사용하는 것에 반대했고, 최초의 원자력 발전소가 지어졌을 때 평화적으로 핵기술을 이용할 수 있게 되자 비로서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그 후로 기술의 발전에 대해 무분별한 찬양을 하는 것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는 점점 커졌다. 특히 최근의급격한 과학기술의 발전이 고도 산업사회를 가능하게 했고 이로 인한 이산화탄소 발생의 급격한 팽창은 지구 온난화라는 돌이키기 어려운 환경적 위기를 심화시키게 되었고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는 한 인류의 미래는 밝지 못하다는 것에 이론을 달지 못하게 되었다. 최근에 있었던 일본의 동부 대지진은 심지어 아인쉬타인의 기쁨도 무색하게 만들었다. 거대한 지진에 의한 쓰나미가 쓸어간 폐허 보다도 통제 불가능한 원자력 발전소의 폭발이 더 큰 재앙을 불러왔고 어떤 기술도 평화적으로만 이용하면 문제가 없다는 믿음이 얼마나 허약한 것인가를 보여 주기에 충분했다. 원자력 발전소에 이용되는 핵기술을 근본적으로 폐기 처분하자는 주장은 과학기술을 도구적 관점, 즉 '우리가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따라 기술은 선하게 이용될 수도 악하게 이용될 수도 있다'는 생각조차 도전받게 되었다. 즉 개발하거나 사용자체를 막아야 하는 기술도 얼마든지 있을 수 있다는 관점을 심각하게 수용해야만 하는 지경까지 되었다. 결국 우리는 어떤 기술을 개발하고 활용해야만 하는가라는, 이전에는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았던 물음에 답을 해야만 하는 것이다. 

행복을 주는 기술이란?


위 그림의 왼쪽편은 라이프 스트로(Life Straw), 즉 '생명의 빨때'라는 휴대용 정수기이다. 많이 알려져 있듯이 아프리카에는 물이 부족할 뿐만 아니라 치명적인 세균에 오염되어 있어 10억명에 달하는 사람들이 고통받고 있다. 라이프 스트로는 이들이 들고 다디면서 물을 마실 수 있는 1인용 '휴대용 정수기'이다. 그리고 아프리카의 여자들, 어린 아이들은 마을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오염된 물을 길어 오기 위해 매일 약 3시간을 허비할 뿐만 아니라 그 자체가 힘든 노역이 된다. 위 그림의 오른쪽에 보이는 큐 드럼(Q-Drum)이라고 이름 지어진 프라스틱 물통은 적은 힘으로 마을까지 물을 길어 올 수 있는 물통이다. 사실 전기도 자동차도 석유도 없는 가난한 마을에서 큐 드럼이나 라이프 스트로우 같은 기구 들은 그들에게 생명을 지켜주는 도구이기도 하고 현실적으로 유용한 도구가 된다. 

쉐플러(Scheffler) 태양열 조리기-아프리카나 아시아의 저개발국에서 많이 사용한다.


마땅한 취사 도구가 없는 가정에 태양열을 이용해서 간단하게 음식을 익힐수 있는 태양열 조리기, 간단한 도구를 조립해서 풍력을 이용한 발전기를 만들고 트랜지스터 라디오를 틀거나 펌프를 가동시키는 기술 등 조건과 환경에 '적정'하게 사용될 수 있는 기술 들이 계속 개발 되고있다. 이러한 기술을 우리는 적정기술(Appropriate Technology)이라 부른다. 이 적정기술은 가난한 사람들도 비용을 감당할 수 있는 기술이라는 의미에서 '소외된 90%를 위한 기술'이라고 불리우기도 하는데 '기술은 어떠해야 하는가'를 설명해 주는 하나의 예라 할 수 있다. 

우리는 효율을 극대화 하는 기술, 이를 통해 더 적은 노동으로 더 많은 생산을 해내는 것을 기술의 핵심 가치로 보는데 익숙하다. 더 적은 투입으로 더 많은 물건을 만들어 내는 기술, 이러한 기술이 지향하는 본질적인 가치는 지금껏 인류 역사의 지난한 과제였던 '먹고 사는 문제'를 해결하는 데 있어서 기술의 결정적인 역할을 강조하는 것이다. 결국 기술이 의미 있는 것은 사람과 사회를 이롭게 하는 것이라는 걸 전제로 한다. 그래서 기술 그 자체는 물론, 그 기술을 어떻게 활용할 것이냐의 문제는 언제나 사람을 이롭게 하는 문제임을 놓쳐서는 안된다. 

기술과 사회

역사적으로 기술의 발전속도가 가장 빨랐던 때는 제2차 세계대전이라고 한다. 절체절명의 전쟁승리를 위해 모든 과학자 기술자들은 온 힘을 다해 기술을 개발했고 현대적인 기술의 대부분의 원판은 이때 만들어 진 것이다. 전쟁기술은 말 그대로 적을 효과적이고 효율적으로 살상하기 위한 기술이었다. 그 이후 고도로 산업이 발전한 현대자본주의에서의 기술은 '더 많은 돈을 벌 수 있는 기술'에 촛점이 맞추어져 있다. 사람을 이롭게 하기 위한 것이냐 아니냐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 돈이 벌리지 않는 기술은 시도 조차 되지 않기 때문이다. 한때 전쟁 승리가 기술 개발의 목적이었다면 지금은 돈으로 사고 팔 수 있는 시장과 자본의 목적으로 바뀐 것이다.

앞서 소개한 시각 장애인이 운전할 수 있는 차량에 적용된 기술을 우리는 적정기술이라 말하지는 않는다. 기술 자체의 내용으로 만 보면 이는 매우 고급기술(high technology)이고 첨단기술이다. 다만 정확히 사람, 구체적으로는 시각장애인이라는 특수한 사람들을 위한 기술, 그러한 목적에 필요한 기술을 연구하고 개발한 것이다. 그렇다면 이 기술은 돈이 될 것인가 안될 것인가. 이러한 연구에서 파생한 기술이 훝날 다른 곳에 활용되면서 돈을 벌수 있을 것이라 예상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결국 별로 돈이 되지 않는 기술이라 해서 이런 기술을 개발하지 않을 것인가? 그리고 이런 기술을 개발할 것이냐 안할 것이냐를 판단하는 기준을 돈으로 판정한다면 이런 시도가 얼마나 가능하겠는가?

사실 시각장애인을 위한 차량이 일상 생할에 까지 적용될려면 아직 넘어야할 문제들이 많다. 이 차량의 안전을 얼마나 신뢰할 수 있는가? 운전면허 시험제도는? 이런 운전자가 모는 자동차의 보험은? 이러한 문제는 기술의 신뢰성 문제만이 아니다. 우리 사회의 의식과 제도가 이를 허용할 만큼의 이해와 동의, 그리고 제도화가 가능할 것인가의 문제가 남는다. 결국, 돈의 문제를 포함하여 사회 속에서 요구하고 동의하고 적용하는 노력이 전제 되어야만 한다. 그리고 이 문제는 타고 나면서 부터 새로운 기술을 개발하는 것을 좋아하고 탁월한 재능과 소질을 가지고 있는 과학자나 기술자들만의 책임도 아니다. 우리 사회 모두가 어떤 기술을 개발하고 어떻게 사회에 접목시킬 수 있을 것인가에 좀더 관심을 기울이여할 과제인 것이다.


대니스 홍 교수의 마지막 코멘트가 인상적이다.

"This is priceless  이것은 돈으로 따질 수 없습니다. 

상상해 보세요, 교실에서 한 교사가 칠판에 글을 쓰고 시각 장애 학생이 그것을 보고 읽을 수 있다는 것을 말이죠. 비시각적 인터네이스(non-visual interface)를 이용해서 말입니다. 제가 오늘 보여 드린 것들은 그저 시작일 뿐입니다."

우리 사회에서 보다 더 많은 사람들에게, 특히 가난하거나 소외된 사람들에게 특히 필요하고 유용한 기술이 많이 만들어 지길 기대한다. 

시각 장애인 차량의 운전을 마치고 감격해 하는 마크 리코보너 씨.. http://www.ted.com/talks/view/lang/kor//id/1158

 

(이 글은 '장애인인권포럼'에서 발행하는 웹진에 컬럼으로 기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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